부부 이야기 - 사막 속에 핀 꽃

‘시인 이철성의 시와 산문’

사막 속에 핀 꽃

부부 이야기 - 사막 속에 핀 꽃

결혼하다, 이스라엘 유학을 결정하다.

결혼전 시인으로서 또 연극인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던 이철성(이하 이씨)은 모교인 서울대 불문과 대학원 MT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미모의 한 여학생, 김진영(이하 김씨)을 만난다. 이씨는 김씨가 시와 연극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이용 접근의 기회를 엿본다. 한번은 경복궁에서 만난 김씨에게 이씨는 탈춤의 기본사위를 보여주며 그 남성적인 엉덩이로 유혹한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김씨는 째즈댄스로 응수하더라. 그때부터 둘은 둘의 앞날이 뭔가 험난하리라는 묘한 기대감에 흥분한다.

탈춤을 추는 신랑과 지켜보는 신부와 하객들
탈춤을 추는 신랑과 지켜보는 신부와 하객들

2년 연애기간, 때론 달콤하게 때론 뜨겁게 때론 격투기를 방불케하는 연애싸움 끝에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는데, 결혼식날, 이씨는 탈춤 패를 동원해 신부와 하객들에게 깜짝 탈춤판을 벌여준다. 하객들은 모처럼 특별한 결혼식 행사에 축복과 박수를 보낸다.

이씨는 고전의 극대본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창작하는 기존의 한국 연극 제작 방식에 회의를 느낀다. 이씨는 몇가지 고민을 한다. 연극을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혼자서 창작할 수는 없을까? 대본 없이 오브제나 시각적인 재료들을 이용해 더 표현적이고 시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을까? 고민의 끝에서 이씨는 그러한 연극을 가르치는 학교를 찾기 위해 전세계를 뒤진다. 그 결과 약 10여 개의 학교를 찾는다.
대부분 유럽과 그 근방에 위치하고 있는 이 학교들은 인형극 학교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중 동구유럽의 학교들은 여전히 전통 인형극을 가르치고 있있고, 서구유럽의 학교들은 좀더 발전된 형태, 즉 오브제극(물체와 배우의 몸을 이용하여 만드는 표현적인 연극)의 형태를 가르치는 학교로 발전하였다. 그 중 이씨가 주목했던 학교는 노르웨이의 Academy of Figurative Theater’와 이스라엘의 The School of Visual Theater’였는데, 이 두 학교는 연극에 다양한 형태의 예술재료-몸, 소리, 공간, 영상, 오브제, 빛과 그림자,이스라엘의 학교로

'The School of Visual Theater'의 홈페이지
‘The School of Visual Theater’의 홈페이지

그림, 조각 등-를 끌어들여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는 학교였다. 그 결과 연극은 미술과 음악 등 다른 예술장르와 혼합된 형태의 공연물이 되었고, 말의 전달보다는 시각적인 재료의 표현적인 전달이 중시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공연예술, 즉 셀프 퍼포먼스( ‘Self-Performance’)라 지칭될 연극을 하고 있었다. 두 학교를 비교한 결과 이씨는 뭔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나라 이스라엘에 더 끌려서 그곳에 시험을 치게 된다. 그리고 힘겨운 몇 차례의 시험 끝에 입학허가를 받는다.

이때! 김씨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버렸다. 김씨는 프랑스 파리 7대학서 이미 불문학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받은 입장. 그렇다면 떨어져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씨는 방학 되면 그리스나 뭐 그런 중간쯤 되는 나라에서 만나지 뭐.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둘은 힘겨운 싸움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결국 (여자의 일생이란….) 김씨는 이씨가 입학허가를 받은 이스라엘의 같은 학교에 신청서를 내고 입학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뒤늦게 보내게 된다. 그리고 무작정 둘은 이스라엘을 향해 기나긴 여행길에 오른다. (아, 김씨의 앞날은 폭풍치는 바다 위의 돛단배! 혹 시험에 떨어지면 이스라엘에 쭈그려 앉아 남편 뒷바라지나 해야 하나? 그렇다고 프랑스로 갈 수도 없고…)

이스라엘을 향해 육로길에 오르다.

티벳으로 넘어가는 한 산등성이에서
티벳으로 넘어가는 한 산등성이에서

한편, 이씨는 즐거운 여행 구상에 빠진다. 이스라엘을 3개월 동안 육로여행(비행기가 아닌 걸어서나 혹은 기차, 버스 등을 타고 가는 여행)으로 가자는 제안. 김씨는 말이 없다. 그러나 결국 이씨의 구체적이고 멋들어진 브리핑을 듣고는 한번 더 이씨의 팔을 들어준다. 그리고 불안한 여행길에 오른다.

티벳의 한 사원의 예배모습
티벳의 한 사원의 예배모습

중국 텐진항 까지 배로 이동-중국내륙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티벳고원으로 들어감-티벳을 종단 히말라야 산맥을 건너 네팔로-네팔을 가로선으로 횡단 인도로 들어감-인도의 북쪽 도시들을 가로로 횡단 파키스탄으로 들어감-파키스탄을 세로로 종단 남쪽 항구도시 카라치에 도착!

파키스탄의 한 사원마을에서
파키스탄의 한 사원마을에서

여기까지가 육로여행의 끝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3개월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이스라엘 학교의 학기
시작에 맞춰 이스라엘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 둘은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한다.

사고가 나기 조금 전의 김씨의 해맑은 모습
사고가 나기 조금 전의 김씨의 해맑은 모습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맥 아래의 쿨루계곡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이씨는 겁도 없이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오토바이를 렌트한다. 김씨는 극구 말리지만 이씨의 무모함을 막을 길은 없다. 이씨는 다 부서져 가는 고물 오토바이를 몰고 마을들을 돌며 시운전을 해본다. 사실 김씨에게 말은 안했지만 혼자 시운전을 하는 동안 벽이나 도랑으로 쑤셔박히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한 시간 후 당당하게 김씨 앞에 나타안 이씨 왈, 야, 타!. 이씨는 김씨를 뒤에 태우고 히말라야 산맥을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가파르고 끝없는 절벽 위에 난간도 없이 난 좁은 길을, 때로는 마주 오는 대형트럭을 피하며 둘은 히말라야 4500미터 까지 오르다. 그리고 예상대로 매서운 추위 속에서 오토바이는 고장나다. 이씨의 고전분투 속에 오토바이는 간신히 시동이 걸렸지만 절벽 근처에서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김씨는 다리에 큰 타박상을 입다.

여행 내내 둘은 빈대들의 집중적이고 계속적인 공격으로 온 몸을 긁고 다니다. 그들에겐 밤마다 거행되는 기나긴 의식이 있다. 그것은 서로 옷을 다 벗고 빈대들이 물고 다닌 상처들에 보라색 물약을 바르는 것! 그 끝 없는 상처의 수를 세면서 둘은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자살폭탄테러의 현장. 예루살렘
오랜 오지여행과 세균 감염으로 지칠대로 지친 김씨

파키스탄 남쪽 항구도시 카라치에서 기나긴 3개월의 육로여행을 끝내고 둘은 간신히 이스라엘 비행기 표를 끊어(아랍의 국가들에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둘 사이의 정치적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로 들어간다. 중요한 사실은 인도여행 중 김씨의 입학시험통과가 통지되었다는 것. 그리고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여행 중 김씨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며 마침내는 뼈만 앙상한 몸과 몹쓸 세균 감염으로 이스라엘 도착 즉시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둘을 불안에 떨게 했던 것은 2000년 이스라엘 가는 육로 여행중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의 대봉기, 이름하여 인티파타가 발생하여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분쟁이 본격화되었다는 것. 둘은 되돌아가지도, 나아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쟁의 땅, 이스라엘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다.

전쟁의 땅,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도착하는 공항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돈다. 신발 밑바닥까지 뒤지는 검문과 딱딱한 얼굴의 총을 겨눈 군인들. 도심 곳곳에 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남녀 군인, 경찰, 사복경찰, 폭주족 차림의 오토바이 특수경찰, 말을 타고 담 너머 집들을 염탐하는 특수 경찰, 쇼핑몰과 식당들마다 입구에 서 있는 무장한 경비원들, 앰블란스의 찢어지는 소음과 연일 테러 소식을 전하는 매스컴들. 그러나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도시 예루살렘에서도 시민들은 쇼핑을 하거나, 옥외 카페에 앉아 느긋이 신문을 보거나(아뿔사! 몇 주 전 자살 폭탄 테러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그 카페가 다시 문을 열었구나!), 때로는 도심 한 가운데 수백 명이 몰려 축제를 벌인다.

2000년 팔레스타인의 대봉기 이후 일주일이 멀다 하고 터지는 자살폭탄테러로 이씨와 김씨가 거주하는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도시로 기록된다. 둘은 간혹 테러의 대상이 되는 대중버스를 타는 대신 비싼 돈을 내고 택시를 타다. 그러나 생활고로 인해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버스를 타다. 대신 버스에 오르는 모든 이가 테러리스트로 보이다.

자살폭탄테러의 현장. 예루살렘
자살폭탄테러의 현장. 예루살렘

2002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유대인에 대한 공격에서 한국교포 세 명이 큰 부상을 당하다.
시인인 이씨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은 시로 읇다.


<예루살렘, 2002년, 4월>  

태초에 신은 입김을 불어  
사람의 숨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어떤 신성을 느낀다.  
늙은 어머니의 입냄새를 맡을 때  
마음이 아프고 뭉클하는 것은 그 때문.  
자는 아내의 부어오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째깍대는 시계소리가 더 커지는 것도  
그 숨 때문.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술에 취해 휘청대며  
속 깊은 말들을 토해낼 때  
내 손끝이 쩌릿해져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싶은 것도  
그 거친 숨소리 때문.  
여기 거리에 쓰러진 한 소녀  
가쁜 숨을 몰아쉬다 천천히 식어간다.  
그 숨이 떠나버린 차가운 나무덩이.  
한 무리의 구조요원과 경찰들이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거리  
너에게서 신은 입김을 거두어 가셨구나.

(2002년, 4월 들어 이틀에 한 번씩 자살테러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테러범 중에는 18세의 팔레스타인 소녀도 끼어 있었다. 오늘 그녀는
대형슈퍼마켓 입구에서 폭탄을 터뜨려 3명의 유대인을 죽이고 자살하였다.)

한번은 이씨가 도심의 가로수 위에 올라가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연극관계자들과 관객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씨는 겉옷을 나무가지 위에 걸어 놓고 편안한 속옷만 입고 나무 위에 누웠다. 그리고 돌조각을 마치 책을 보듯 읽고 있었다. 이때 두 명의 여자경찰이 다짜고짜 접근해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은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때가 때인 만큼 다들 모두 조심하는 판국에 한 동양인이 나무 위에 올라가 옷 벗고 누워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이겠는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연극관계자가 상황을 한참 설명하고 나서야 그들은 다른 관객들처럼 뒤로 물러나 감상을 한다. 어떤 시민은 지나가다 나무 위의 이씨를 보고는 어, 근처 타일랜드 식당서 홍보를 나왔나보군! 하더라.

요르단 남부의 바위사막, 와디럼에서
요르단 남부의 바위사막, 와디럼에서

이집트 서부, 리비아 국경지역의 한 오아시스 마을에서
이집트 서부, 리비아 국경지역의 한 오아시스 마을에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즈음해 이씨와 김씨는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 후세인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날리겠다고 했기 때문. 덕분에 피라미드도 보고 이집트 서부사막을 지나 리비아 국경까지 오지여행을 하다. 요르단 남부 바위사막들을 돌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이라크는 함락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건재해 있더라.
요르단 남부의 바위사막, 와디럼에서
요르단 남부의 바위사막, 와디럼에서
요르단 남부의 바위사막, 와디럼에서
요르단 남부의 바위사막, 와디럼에서

실험의 땅, 이스라엘

이스라엘 주요일간지 ‘마아리브’에 실린 공연사진
이스라엘 주요일간지 ‘마아리브’에 실린 공연사진

2000년 10월 예루살렘의 공연예술학교 The School of Visual Theater’에 입학하면서 이씨와 김씨는 비주얼씨어터 꽃을 창단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던 둘은 언제까지 배우고만 있을 것인가. 배우면서 공연활동을 하자! 라는 생각으로 배우면서 작품을 만들어 활발한 공연활동을 하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의 국제 혹은 국내연극 페스티벌들과 극장들에 초청을 받으면서 공연기회를 얻다. 양대 주요 일간지와 방송 등 매스컴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스라엘에 있는 유일한 외국인 극단으로 자리를 굳혀 나가다. 2002년에는 독일의 에르푸르트 국제 인형극 페스티벌 SYNERGURA’에 공식 초대되어 공연을 하다.

몸과 영상을 실험하여 만든 비디오 영상극 ‘어머니의 장례식’의 한 장면
몸과 영상을 실험하여 만든 비디오 영상극 ‘어머니의 장례식’의 한 장면

3년간 이씨와 김씨는 그들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든다. 6개 이상의 작품이 비주얼씨어터 꽃의 레파토리가 되다. 작품들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개인창작으로 1-2인이 만들고 출연하는 셀프 퍼포먼스 Self-Performance, 말보다는 몸, 오브제, 그림자, 영상, 그림과 조각, 가면, 인형 등 시각적으로 강한 예술적 재료를 사용하는 비쥬얼 씨어터 Visual theater, 이미 있는 극대본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예술적 재료들을 실험해서 만드는 재료극 Material theater, 미술과 음악과 연극이 자유롭게 섞여서 만들어지는 장르혼합극 Interdisciplinary Theater 등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짧게는 15분, 길게는 40분 분량으로 보통 한개 혹은 두개를 묶어서 공연한다.
작품들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집안에 인형이나 가면, 소품들이 쌓여 나가다. 마치 가족이 늘어나는 느낌. 고국을 떠나 중동의 오지에서 살다보니 이씨와 김씨는 외로움에 지치다. 인형이나 가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다. 말을 걸면 그들은 대답해 오다.(물론 이씨와 김씨가 서로 꾸며 하는 대화이지만.) 이 인형, 가면과 노는 놀이를 통해 때로는 진짜로 인형과 가면이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다. 마치 여럿이 함께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다. 혹, 이씨와 김씨가 싸워 얘기를 중단하는 때는, 인형이나 가면에게 대신 얘기 해 줄 것을 부탁하다. 이 친구들은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둘의 화가 풀리게 적극 도와준다. 둘은 이렇게 외국생활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낸다.

예루살렘의 대표적 공연장 ‘제라르 베하르’에서의 탈춤과 창 공연
예루살렘의 대표적 공연장 ‘제라르 베하르’에서의 탈춤과 창 공연

이씨와 김씨는 비주얼씨어터 꽃의 레파토리 공연 말고도 한국전통춤과 노래를 공연함으로써 한국 전통 공연예술을 이스라엘에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의 제일 큰 디스코 텍인 하오만 17 극장에서의 탈춤과 창 공연을 비롯하여 여러 극장과 페스티벌에서 한국 탈춤, 살풀이, 창 등을 선보이다. 우리 전통 예술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서 많은 사랑과 후원을 얻다.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의 후원을 받다.

조각여인이 조각사내에게 목도리를 건네주는 장면
조각여인이 조각사내에게 목도리를 건네주는 장면

연애의 애틋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작품 그림자로부터는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는 사내가 한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그 폭력적 상황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조각 그림자극으로 풀어나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 이씨의 개인적 경험에서 만들어졌다. 작품 속의 사내는 이씨 자신이고, 여인은 김씨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씨는 자신 주변의 세상이 재배치되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폭력과 싸움의 세계에서 사랑과 평화의 세계로. 당시 이씨는 김씨에게 이러한 시를 바친다.


<오늘은 10월>  

난 바람이었다.  
당신이 나타나기 전.  
당신이 내 삶에 들어와 오래 머문 지금  
난 여느 나무들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오늘은 10월  
가을 하늘과 햇빛과 바람과  
삶의 지린 냄새 속에  
나는 나무다.  
처음으로 땅에 뿌리 박고  
나의 형태를 가졌다.  
나도 떨어뜨릴 나뭇잎들을  
갖게 되었다.  
부부싸움이 작품이 되다  

작품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

결혼 직후서부터 본격적인 부부싸움의 시기로 돌입하다. 때론 말로, 때론 육체적으로 싸우다.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온 몸으로, 온 세상으로 싸우다.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 남과 녀의 이 풀 수 없는 업을 작품으로 만들다.

작품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는 태초에 하나였던 영적 존재가, 그 속에 내재하는 이기적인 두 존재의 싸움에 의해 둘로 쪼개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보이스, 가면, 의상 오브제 극이다. 둘은 서로 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쪼개진 상황에 만족해 하지만 이윽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느끼게 된다.(가면으로 상징화되는 이 둘은 하나였을 때는 뿔이 두 개였지만, 쪼개지면서 각각 외뿔의 기형적 형상이 된다.) 즉, 둘은 떨어지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하나여서 완전하기를 원한다. 이 역설이 극을 비극으로 만든다. 남자는 결국 여자를 죽이게 되고 그 죄책감에 자결을 한다. 남, 녀의 비극을 그린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는 이스라엘의 오뎀 ODEM 연극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기나긴 부부 싸움은 결국 ‘태초에 하나가 있었다’라는 공연까지도 취소하는 상황을 낳는다. 2003년 4월 둘만이 출연하고 둘이 공동 연출을 하는 이 작품은 그 다음 공연을 위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다.
이씨는 이 당시 김씨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던진다.


<지친 영혼>  

넌 내게 소리지른다.  
넌 내 두 팔이 꺽여 아스팔트 위에 쳐박힐 때까지  
날 비난하고 헐떡였다.  
넌 잊었니?  
내 두 팔이 네 등을 감싸며  
어깨 위로 오르던 푸른 날개짓을.  
넌 잊었구나.  
네 눈이 내 두 눈 속으로 들어와  
지친 영혼 위에 눕던 때를.  
네 눈은 탁하고 불붙고  
증오의 생명이 깊게 숨쉬고  
네 여린 영혼을 단번에 들어올려  
아스팔트 위에 내동댕이 쳐 버렸다.

배꼽은 점점 움직이기 시작하고 소녀는 당황한다.
배꼽은 점점 움직이기 시작하고 소녀는 당황한다.

아이의 탄생을 작품으로 예언하다 - 작품 나의 배꼽 이야기

김씨는 그 다음 개인 창작 일인극을 구상하며 남과 여의 관계를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다. 한 소녀의 배꼽의 근원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보이스와 의상 오브제로 표현한 극. 소녀는 엄마에게서 배꼽을 만지지 말 것을 명령받는다. 그러나 어느 날 소녀는 배꼽의 끝을 알고 싶어서 배꼽을 파헤친다. 그러자 배꼽은 커다란 남자의 성기 같은 괴물이 되고 소녀와 배꼽은 뒤엉켜서 싸운다. 그 싸움은 꼭 싸움이면서 섹스 같아 보인다. 싸움의 끝에서 지친 소녀는 어느새 자신이 여인으로 성숙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진통의 끝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이 작품은 남성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힘겨움을 김씨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공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는 정말 입덧을 시작한다.

입덧을 하며 김밥을 팔다

2003년 학교를 졸업한 이씨와 김씨는 생활자금과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삯을 위해 김밥을 팔기로 결심하다. 아침 7시-10시까지 김밥을 만들어 11시-2시까지의 점심시간을 겨냥해 길거리의 상점이나 사무실에 무작정 방문판매 한다는 계획이다. 정말 힘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고정 고객이 생기기까지 여름 땡볕을 무거운 김밥 상자들을 이고 걷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났다. 어느 날 김씨는 거리에 주저앉아 속에 있던 것을 다 토하고 앓아누웠다. 애가 들어선 것이다. 이후 2달간은 이씨만이 김밥을 팔았다. 이씨만이 김밥을 만들었다. 김씨는 거실조차 나오지 못했다. 김밥 냄새만 나면 토했으니까. 그렇게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생활은 어둡게 흘러갔다.

한번은 김씨가 임신 때문에 공연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했더니 그 말은 들은 유대인 스승은 아기를 만드는 일은 일생 최대의 창작이지요.하고 말한다. 그 말은 김씨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겨울에 들어설 무렵 이씨는 다음 2편의 시를 쓴다.


<추운 방>  

이 얼마나 행복하니  
추운 방  
따뜻한 차  
발 밑의 전열기구  
아내는 누워 내 시를 욕하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임신한 배불뚝이 내 아내.  


<계절을 품에 안은 아내>  

우린 뱃속의 아기를  
'겨울'이라 이름하였지요.  
지금은 겨울이니까.  
겨울아, 겨울아, 하고 부르면  
적막한 겨울 들판과 소나무들  
아내 뱃속에 있습니다.  
곧 봄이 되면  
우리 아기 이름은 봄이 됩니다.  
봄아, 봄아, 하고 부르면  
아내 뱃속에 눈 녹은 시냇물 소리  
졸졸졸 들리겠지요.  
봄비에 젖는 아내의 눈물은  
똑, 똑, 똑, 처마 밑에 떨어지고  
여름이 되면  
우리 아기 여름이가 이 세상에 나옵니다.  
숲은 무성하고  
한낮의 공기는 후끈한데  
아내는 행복합니다.  
아내는 눈물을 거두고  
세상에 회출할 준비를 합니다.  
여름을 품에 안고 소나무숲을  
거닐겠지요.  
난 계절을 품에 안은 아내가  
정말 부럽습니다.  

아기의 탄생, 비주얼씨어터 꽃의 한국에서의 첫 공연

순둥이 예지!

이씨와 김씨는 마침내 2003년 12월 한국땅을 밟는다. 공항문을 나서자 겨울의 손톱, 발톱이 둘의 얼굴을 무참하게 할퀸다. 3년간 중동의 뜨거운 햇살 아래 있다가 처음으로 한국 토종 추위의 매운 맛을 본다.

2004년, 한국에서의 공연을 준비하는 중, 김씨는 6월 24일 득녀하다. 작품 나의 배꼽 이야기에서 손 만한 크기의 천인형으로 보여주었던 아기의 탄생이 이제 실제가 된 것이다. 2004년 11월의 공연에서 천인형 대신 실제 아기를 등장시키는 계획을 세우다. 출연진이 둘에서 셋으로 늘다.

비주얼씨어터 꽃의 제작팀인 이씨와 김씨 이외에 기획홍보팀-장현주, 홍영택-을 꾸리다. 문예진흥기금의 후원으로 다음과 같은 공연사업을 벌이다.

2004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