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시인 이철성의 시와 산문’

인도의 첸나이에서 반수리(인도의 전통 피리악기) 연주자 스리 사메르 라오를 만났다. 첸나이의 칼락슈트라 예술대학의 캠퍼스에서였다. 한국의 연극팀과 인도의 배우, 연주자들이 협업을 하는 현장을 방문하던 차였다. 캠퍼스는 도시 외곽 한적한 숲 속에 있었다. 나는 한 달간 인도 남부를 여행하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작은 홀에서 연습이 진행되었고 난 한쪽 구석 마룻바닥에 몸을 누이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저음의 피리소리가 날 들어올렸다. 소리는 마치 미풍과 같았다. 햇살이 찬란한 오전이었다. 소리는 몸과 뺨을 간질이는 숨결이었다. 난 그 숨결에 들어올려져 홀을 나와 숲을 거닐었다. 이미 신발을 벗어버린 채였다. 맨살이 부드럽고 따뜻한 흙들을 그러잡았다 놓으면서 걸었다. 숲의 빛과 그늘이 교대로 몸을 간질였다. 첸나이의 2월은 온화한 태양과 나무와 식물과 꽃들과 미세한 공중의 생명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부드러운 미풍에 출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신의 숨결인 듯 모든 것이 그 은총을 받아 출렁이고 있었다.

반수리의 연주자 라오는 그 후 한 달이 지나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참여하는 공연을 보러 서울엘 나갔었는데, 공연의 팜플렛 그의 사진 옆에서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11살 어린 나이에 반수리를 통해 숨 쉬는 삶을 선택하다…’ 아, 이 말을 읽자 첸나이의 숲이 확 다가왔다. 나로 하여금 맨발로 숲을 거닐고 자연의 미풍과 신의 숨결을 체험하게 한 그곳. 그 시작점에 반수리의 연주가 있었다. 그가 반수리를 통해 진정한 숨을 시작한 것처럼, 그의 숨결이 내 몸으로 들어와 날 진정 숨 쉬게 하고, 난 그 숨에 생기를 얻어 일어나 걷고 춤추고, 나의 열린 숨 안으로 자연과 신의 숨결이 들어오고, 그래서 숨결과 숨결이 서로를 호흡하여 연주자 라오와 반수리와 나와 자연 우리 모두가 하나의 협주를 이루었나 보다. 음악은 위대하다. 음악가는 위대하다. 라오는 결국 내 몸을 연주했다. 내 몸은 라오를 위해 나쁘지 않은 악기였다.

‘숨’이란 무엇이냐. ‘숨 쉰다’는 것은 무엇이냐. 성경의 창세신화는 신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더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한다. 신의 숨결이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사람은 생명과 영혼을 얻었다. 그래서 숨은 신성하다. 신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인간의 숨결을 통해 신성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아이의 달콤함 숨결, 청년의 뜨거운 숨결, 슬피 우는 아줌마의 처절한 숨결, 노인의 냄새나는 숨결, 그것들은 숨결이라는 이름만으로 우리를 흔든다. 숨이 빠져나간 몸, 그 몸을 보면 알 수 있다. 숨이 머무는 몸이 얼마나 기적 같고 신비로운지. 새근거리며 잠자는 어린 아이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 보면 모든 삶의 근원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숨이다. 숨이 없는 몸은 나무토막과 다를 것이 없다. 돌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흙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썩어 문드러지고 구더기들 우글거리는 오물과 다르지 않다. 비로소 숨이 들어와 온몸이 맑게 되고 생기 나고 일어서게 된다. 몸은 일어나서 먹을 것을 찾는다. 과일을 따먹고 시냇물을 마시고 냇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마신다. 세상은 신의 숨결로 가득하고 열매들로 가득하다. 몸은 한가로이 앉아 흥얼거린다. 신의 숨결이 몸을 연주하는 소리다.

진정으로 숨 쉬는 법을 늦게 배웠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엔 몰랐다. 좀 더 커서 숨 쉬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어린 시절엔 나무에 올라서 숨 쉬었고, 뒷산 둥근 무덤들에 올라 숨 쉬었다. 아비의 품에서 어미의 품에서 동네 아줌마나 누이 처녀의 품에서 숨 쉬었고 동네 형들의 등에 업혀 숨 쉬다 잠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구네 집인지도 몰랐다. 따뜻한 날엔 따뜻하게 숨 쉬었고, 장맛비엔 콸콸콸 빗물처럼 숨 쉬었고, 냇물에선 발가벗고 물속에서도 숨 쉬었고, 겨울엔 맨 눈을 먹고 캑캑대며 눈물 흘리면서도 숨 쉬었다. 땅의 흙을 두 손으로 잡고 뿌리고 던지며 놀 때도 뿌연 흙먼지 속에서 잘도 숨 쉬었다. 좀 더 크면서 숨 쉬는 것이 잘 안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이십대의 중후반 직장생활, 삼십대 초반까지… 이십대 초반 갑자기 터져 나온 시(詩)들을 통해 가끔 뭉쳤던 숨을 쉬었다. 몇 번의 연애 동안 간혹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숨을 쉬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숨 막힌 시간이었다. 군대와 직장생활은 숨을 앗아가 버렸다. 숨을 쉬지 못하는 몸이 항문에서 얼굴까지 반란을 일으켰다. 자꾸 화가 나고 폭력적이 되었다. 논쟁을 하던 친했던 대학 선배형을 마구 팬 적도 있었다. 형은 놀라서 쳐다만 보았다. 미안한 일이다. 착한 형…

숨은 나를 떠나 다른 곳에 있었다. 저 나무 위에, 저 달과 함께, 저 산과 숲 속에. 그것들과 같이 숨 쉴 수 없었다. 그 방법을 몰랐다. 무언가 나에게 다시 숨을 넣어줄, 그래서 막혔던 숨의 통로들이 열리고 그래서 비로소 저 다른 숨결들과 호흡을 나눌, 그러한 숨결이 필요했다.

어떻게 몸이 다시 숨을 쉬게 되었는지, 어느 때부터 자연과 신의 숨결을 받아 마시고 나의 숨결을 내 보낼 수 있게 되었는지 잘은 모른다. 사실 무엇이, 어느 순간부터인지가 중요할 텐데, 미세한 4월의 미풍을 즐기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대략을 추측할 뿐이다. 시를 쓰면서 시가 자연의 숨을 받아마시게 도와주었다. 사람 속에 숨은 숨들을 읽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시를 잘 안 읽는 이 시대에 독자의 숨들이 내게 전달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주업인 퍼포먼스를 통해서 온갖 공간에서 온갖 관객들을 만났다. 갓난애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굴다리 아래에서 대극장 무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터져 나오는 숨들을 어느 때는 받아 마시기가 버거웠다. 공연을 마치면 몸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나의 숨과 수백 명의 숨들이 뜨겁게 서로를 받아 마시는 기류 속에서 빨갛게 익어버린 것이다. 이젠 숨이 우리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한다! 공연자인 퍼포머는 공연이 진행되면서 점점 익어가고 그 맛있는 요리를 관객 모두가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인간을 통해 숨을 쉬게 되었다. 누구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십대 중반 마음에 병이 들어 세상을 등지고 은둔했는데 오랫동안 안 보이던 어머니가 옆에 계셨다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 나가 숨 막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자를 만나 가끔 막힌 숨을 터뜨렸다. 어느 때는 둘 다 숨이 터지지 않아 막힌 가슴을 부여잡고 안 나오는 소리로 꺽꺽 울었다. 몇 년이 지나고 결혼 후 또 몇 년이 지나 근 십 년이 지나서야 서로 숨을 주고받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린 아이를 통해 숨을 쉬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쉬웠다. 두 번이나 태어나는 아이를 받으며 느꼈다. 온몸으로 터지는 울음, 그것이 바로 숨의 첫 모습이다. 그것에 처음엔 놀라서 어리둥절하고 두 번째는 정말 하하 웃었다. 나의 숨도 같이 터져 웃었다. 어린 아이는 몸 전체가 숨이다. 깨어서는 앙앙 울거나 씩씩거리고 잘 때는 소리도 크게 색색거린다. 가슴에 귀를 대고 있으면 그 빠르고 시끄럽고 힘찬 심장의 방망이질 소리에 정신이 없다. 그것은 숨소리를 너머서 ‘숨 외침’이다. 나는 온통 숨이다, 나는 살아 있다, 나의 숨이 나의 말이다! 라고 외치는 숨 외침이다. 숨소리를 잘 들어야 아이의 상태나 병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안고 아이의 숨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숨을 배운다. 숨 쉬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세상과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운다. 자연이 숨 쉬기 시작하고 초목이 숨을 쉬기 시작하고 냇물과 강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를 자주 하나 보다. ‘아, 이 나무가 안녕하고 인사하네. 아, 여기 돌멩이가 화가 났나봐. 못생겼다 그치? 야, 저기 좀 봐라. 고양이가 널 계속 쳐다보네. 오늘 자기 집에 가서 놀자고? 오늘은 하늘이 왜 저러냐. 비가 오려나. 오줌 싸려나 보네. 너 오줌 언제 넣더라. 오줌 마렵지? 그치?…’

예루살렘에 살 때 처음으로 숨을 주제로 시를 썼다. 그때는 숨 쉬는 법을 알려고 무던히 애쓰던 때였다. 결혼 초기였고 유학시절이었다. 아직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예루살렘은 온통 전쟁통이었다. 자연 또한 녹녹치 않았다. 숨 막히는 태양 숨 막히는 안과 밖의 싸움…

예루살렘, 2002년, 4월

태초에 신은 입김을 불어
사람의 숨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어떤 신성을 느낀다.
늙은 어머니의 입 냄새를 맡을 때
마음이 아프고 뭉클한 것은 그 때문.
자는 아내의 부어오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째깍대는 시계소리가 더 커지는 것도
그 숨 때문.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술에 취해 휘청대며
속 깊은 말들을 토해낼 때
내 손끝이 쩌릿해져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싶은 것도
그 거친 숨소리 때문.
여기 거리에 쓰러진 한 소녀
가쁜 숨을 몰아쉬다 천천히 식어간다.
그 숨이 떠나버린 차가운 나무덩이.
한 무리의 구조요원과 경찰들이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거리
너에게서 신은 입김을 거두어 가셨구나.

- 2002년, 4월 들어 이틀에 한 번씩 자살테러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테러범 중에는 18세의 팔레스타인 소녀도 끼어 있었다. 오늘 그녀는
대형슈퍼마켓 입구에서 폭탄을 터뜨려 3명의 유대인을 죽이고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