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버리다

‘시인 이철성의 시와 산문’

여행에서 돌아왔다. 신발을 벗었다. 안팎으로 먼지 가득하다. 한 달을 거쳐 간 땅의 흙들을 고스란히 일정량씩 채집하여 신발의 미세한 틈틈마다 컬렉션한 듯하다.

신발을 버렸다. 그냥 문 밖에 두고 들어왔다. 그리고, 영원히, 안녕…

무언가 몸의 일부가 잘려나간 듯… (그러나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 도마뱀의 꼬리? 토사구팽(兎死狗烹)?

거의 넝마가 된 신발은 버릴 만하다. 그래서 버렸다. 그러나 아직 문 밖에 있다. 그대로 있다.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뿐. 그러나 그것을 버렸다고 말할 수 있나? 아내가 문 밖에서 묻는다. 버릴 예정이냐고, 길에 가져다 버리고 오냐고. 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여행 내내 신발을 벗고 신는다. 숙소에 들어가서 신발을 벗어 구석에 잘 모셔 놓는다. 모셔놓는다는 것은 문밖에 두지 않는다는 것. 도난을 염려해서다. 오만가지 절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방 안 구석에 두는 것은 더러워서다. 매일 수 킬로를 걸으며 갖은 더러운 것들을 밟았을 신발. 모셔두기보단 병원균처럼 보기 일쑤다. 아침이 되면 다시 그걸 신고 길을 나선다. 더러운 줄 알지만 맨발로 땅을 밟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래도 이 신발이 한 달간 내 발밑에서 수 천 킬로를 다니며, 낯선 오지의 땅과 직접 몸을 섞으며, 그 흙의 양분과 오물과 그 땅에 쌓여 있는 케케묵은 시간의 퇴적들을 죄다 혀로 핥으며, 온 몸으로 여행하였다. 진정한 여행자는 신발이요, 난 그 뒤에 숨어 풍경을 유람하는 귀족일 뿐!

그런 신발을 버렸다. 아니, 아직 문밖에 있다. 아내가 또 묻는다. 버리라는 거야 두라는 거야! 난 말한다. 버려! 버리라고! 버릴려고 문 밖에 뒀잖아! 버려! 내 말 들려?
여행은 끝났다. 새까매진 얼굴, 수염을 밀고, 도시의 옷을 입고, 가죽으로 된 새 신발을 꺼내 신고 일하러 나간다. 서울로. 문 밖에 둔 신발은 이젠 없다. 새 신발. 발이 두텁게 느껴진다. 땅 전체에 두꺼운 가죽이 깔린 듯, 둔탁하고 뚜걱거린다. 그러고 보니 흙이 없다. 죄다 세멘 아스팔트. 멈춰 선다. 괜히 버렸다. 빨면 한 반년은 더 쓸 텐데. 마치 내 피부가죽처럼 부드러웠는데. 내 꼼지락이는 발가락들처럼 유연했는데. 내 예민한 후각과 미각처럼 내 모든 감각을 그에게 맡겼었는데. 그러고 보니 더 생각나는 것은, 밤새 다른 도시로 가는 야간버스에서 발밑에 구겨진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 아침 퉁퉁 부은 두발을 다시 감싸주며 새 길, 새 땅을 걷게 해 주지 않았나. 원래는 푸른 하늘색으로, 눈처럼 하얀 끈이 엑스자로 가지런히 매어져 있고, 알파벳 N자가 크게 박혀있던 운동화. 먼지 케케로 묻어 점차 땅의 색깔로 변해갔지.
그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