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소와 마주치다

‘시인 이철성의 시와 산문’

흰 소와 마주치다

자전거를 타고 북적대는 대로의 한 모퉁이를 돌다가, 크고 흰 한 마리의 소와 마주쳤다. 난 순간 균형을 잃고 엉거주춤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소는 막 내 옆을 지나치며 그 큰 눈망울을 돌려 날 지긋이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크고 위엄이 있어, 하마터면 무릎을 꿇고는 그 앞에 머릴 조아릴 뻔했다. 소는 마치 무슨 중대한 예언을 말하는 자의 엄격함으로 천천히 고갤 돌려 거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거리는 장사치들과 그들의 물건과 그곳에 몰려든 뜨내기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고함과 욕설과 웃음과 능청이 거리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나는 소의 등에 믿기지 않게 튀어 오른 큰 혹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소는 그 몸체만한 큰 두 뿔을 들어 무언가 말할 자세였다. 그의 온몸에서 돌출한 뼈들은 그가 무언가 절실함의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는 걸 증명이나 하듯 심하게 꿈틀댔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로운 채찍이 그의 등짝을 갈랐고, 소는 헉, 하며 고갤 푹 꺾는 것이었다. 한참 후 그는 길게 늘어진 혀를 힘겹게 추스리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끄는 마차엔 수많은 곡물더미와 농기구와 가구들, 그리고 가난한 한 가족이 타고 있었다. 갓난아기는 더위에 지쳐 울고 있었고, 눈먼 노인은 마차가 길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를 오랫동안, 오랫동안 쳐다보는 것이다.

                -인도, 아그라

시집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에 수록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