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시계

‘시인 이철성의 시와 산문’

딸아이의 시계


길고 긴 밤
짙고 검은 밤
잠결에 눈을 뜰 때마다
아이의 머리 방향이 바뀌어 있다.
밤새
모두 눈 감은 어둠 속에서
아이의 머리는 방향을 바꾼다.
시곗바늘처럼
검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별들의 우주를 헤엄치는 우주선의 방향타처럼.
땀에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주의 시계에 자신의 시계를 맞추기 위한
그 끊임없는 노력을 안쓰러워하며
생각해 본다.
생명이 우주를 듣는 소리
갈매기가 육지를 맡는 냄새
눈 먼 수캐가 횃대에 올라 바라보는 
우주의 시계.
길고 긴 밤
짙고 검은 밤
아이의 젖은 이마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검은 바다
그 속에 떠 있는 작고 빛나는 물병    
우주의 시간.

시집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에 수록된 시이다.